본문 바로가기

Healthcare

일기 #160506 - 일상적인 죽음


카트 위에 도뇨관이 둘. 비위관이 둘. T-tube가 하나.

'아이고...오늘 많네..'


간호사가 끌어주는 카트를 처진 어깨를 하고 졸졸 따라다닌다. 


장갑을 끼며 이런 저런 설명을 지루하게 늘어놓고는 환자의 코에 비위관을 밀어 넣는다. 

환자 어깨를 톡톡 쓰다듬으며, '고생하셨어요' 라는 글자를 입밖에 늘어놓고는 다음 환자를 향해 걸어가는데,


간병사님이 날 부른다. 

'선생님~ 이 분좀 봐주세요, 좀 이상해요'


고개를 돌려보니, 얼굴이 거무수룩한 할머니 한 분이 눈을 반 쯤 뜬채로, 누워계셨다. 

아무 정보 없이 갑자기 이렇게 환자를 보는건 참 어색한 일이다. 


간단한 설명조차 곁들이지 않은 날 것의 환자는 

나를 날 것인 채로 서 있게 한다. 

(건강한 사람부터 말기 환자까지 다양한 환자들이 있는 요양병원에서는 이 사람이 누군지, 평소에 어느정도 상태였는지 모르고서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진료를 하기가 어렵다.)


할머니는 힘들어 보였다. 

'어머니 눈 좀 떠보세요' '저 보이세요?'

할머니가 눈을 뜬다.

'할머니! 어디 아프세요? 많이 힘드세요?'

'ㅇ...아니..'

들릴듯 말듯 온몸의 힘을 모아 긍정인지 부정일지 모를 의미의 단어가 거무스름한 입술위에 스쳐지나간다. 


'이 분 평소에는 좀 어때요? 말씀은 좀 하시던 분인가요?'

'말씀 잘 하시제.. 쪼마 힘들어 하긴 했어예'

코에 걸수도 있고 귀에 걸수도 있는 애매한 문장으로 간병인이 대답을 한다. 

보고란건 옆에 조그많게 책임을 첨부해서 위로 전달하면, 그 때부터는 받은놈 것이 되어 버린다.


'간호사쌤한테 병력이랑 바이탈 좀 체크해달래야겠다...'


.

.

.

.


30분 뒤.

'선생님!! 이쪽 좀 와주세요!!'

비위관에 젤리를 묻히고 환자 콧구멍을 조준하고 있던 나는 손에 들고 있던것을 내던지고 옆방으로 흘러가듯 들어갔다. 


심정지. 아까 그 할머니.


침대를 처치실로 옮기면서 다급하게 물었다.

'DNR(심폐소생술금지)이에요?'

'네?'

'DNR이냐고요!'

'그게.. 저기 지금 갑자기 이래요.. 저도 방금 전에 불러서 와봤더니, '

'DNR 이냐고요! CPR(심폐소생술) 해도 되냐고요!'

'아.. DNR이요..? 맞아요.. '


해드릴 것이 없었다. 


예의상, 양심상, 이런저런 처치를 지시하고, 환자 차트를 열었다. 


-난소암

-알츠하이머 치매

'위 환자는 3년전 난소암을 진단받고, ...(중략)... 치료를 받지 않고 지내다 치매증상이 악화되어 가료위해 입원.'


난소암 말기 환자였다. 

보통은 보호자가 환자의 임종을 맞이 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는 경우는 어찌 손을 쓸 수가 없다. 

산소마스크라도 씌우고 덧없이 엠부백을 꾹꾹 눌러본다. 

혹시 가슴을 누르는 시늉이라도 약간 해본다. 모니터의 심전도 그래프가 약간씩 출렁인다.

자그마한 할머니 몸은 내 큼직한 손바닥으로 눌렀다가는 으스러질 것 같다.


보호자가 도착하고 나서 사망선언을 하는것. 보호자들을 위한 최선이었다. 

환자분께는 어떤게 최선인지 잘 모르겠다. 


보호자가 도착 하기 전까지 약 20분간,

나는 처치실에 생물학적으로 사망하였지만, 법적으로는 생존해 계신 환자분과 둘이서 있었다. 

 

물끄러미 환자를 바라본다.


'많이 힘드세요?'

'아니'


환자가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많이 힘드세요?'에 '응' 으로 대답할 어머니가 많을까 '아니' 라고 대답할 어머니가 많을까. 


아버지는 어떨까.



첫번째로 딸이 도착했다. 나의 이모 뻘이다.

나는 엠부를 짜던 손을 멈추고 약간의 설명과 신체진찰을 한다음. 

사망선언했다. 

'20xx년 5월 6일 ..시..분 ...님 임종하셨습니다.'


딸이 오열한다. 

예정된 죽음도 받아들이기 힘든것은 마찬가지다.


처치실을 나오니 딸과 비슷한 연배의 아저씨가 들어온다.

'지금 막 임종하셨습니다.'

아들이 오열한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소리는 한 층 더 커진다. 


.

.

.


'많이 힘드세요?'

'아니'


차마 자식들에게 어머니의 마지막 말을 전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생각나는 5월이다. 



------------------------------------------------------------------

*모든 내용은 픽션이며 사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