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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care

환자는 항상 신호를 준다.


complience에 관한 이야기다. 


재작년부터 지독히도 혈압약을 안드시는 할머니가 계셨다.


보통 그런분들은 병원에 발을 끊어버리기 마련인데,

이 분은 신기하게도 잊을만 하면 오시고,중간 중간 약을 빼먹고 오시고,

그나마 다 먹었을때는 일주일정도 안먹다가 오시고,

그런데 꾸준이 오시긴 오셨다.


매번 혈압을 재면 180/100 전후다......


그래도 와서 하시는 말씀이 항상 "집에서 잴 때는 괜찮았어요. 한방병원에서 쟀을때는 괜찮았어요." -_-+ 하시니까 제대로 된 f/u을 할 수가 없었다.

 

이 분을 어떻게 해야 하나.. 약을 올려야 하나.. 하다가도

항상 두려운 눈빛으로 진료실 문에서 엉금겅금 걸어 들어오시는데, 

white goun Hypertension도 의심되니 함부로 약을 올리기도 그렇고... 

내가 인간이 모질지를 못해서, 크게 혼내지도 못하고...

항상 우물쭈물 하다가 타이르듯이 그저 잔소리나 좀 할 뿐이었다. 


그러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것이 

" 다음번에 집에 있는 혈압계 가져오세요." 정도였다.

물론 한번도 혈압계 안가져오셨다......


이렇게도 한번 말씀 드렸었다. 

" 혈압수첩 드릴테니까 집에서 resting 상태에서 재세요" 

(물론 이렇게 말하진 않았고 resting 상태가 어떤건지 설명은 길게 해드렸다. )

오차측정도 안한지 5년은  혈압계가 뭐가 정확하겠노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냥 말씀드렸는데.


오늘 간만에 그분을 다시 봤다. "혈압약 먹고싶지 않아요." 하는 투정과 함께.

흔한 할머니들의 약투정이겠거니..  생각하고는

"그래도 오늘은 한달만에 오셨네요? 약 꼬박꼬박 잘 드셨나봐요?"

하면서 툭툭 버릇처럼 처방을 넣고 있었다.

쭈뼜쭈뼜하시면서 내놓는것이 지난번에 드린 혈압수첩.

"이야~ 이것도 적어오셨어요~? 어디보자...."

.

.

한달동안  2~3일에 한번씩 혈압수첩에 혈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

.


대부분 140/80언저리에서 혈압이 유지되고 있었다. 

'아 약을 올려야겠다!' 마음을 먹고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하는 고민하던차에 

할머니가 입을 무겁게 여신다.

'사실 ... 선생님한테 거짓말 한게 하나 있어요.'

'네? 어떤건데요?'


'그동안 약을 반쪽 씩만 잘라먹었어요.'


두둥


'헉.. 그러셨어요? 그래서 혈압이 계속 높았나봐요'


'예전에...'


하면서 말문이 터지시는데


재작년에 혈압약을 지나치게 많이 써서 쓰러지신적이 있단다.

그런데 자리에 앉아서 회복되길 기다려야 하는데 

자식들이 억지로 부축해서 병원까지 가는바람에 중간에 넘어지고 얼굴도 꺠지고 하면서 너무 죽을 고생을 했더랜다. 

그런데 혈압약을 안 먹으니 어지러운것도 없어지고 괜찮아 졌다는거다. 

게다가 의사한테 가면 맨날 왜 혈압약 안먹냐고 구박하고.. '할머니 죽고싶어요? 왜 안먹어요!' 라는 얘기를 들으신적 있다고 그러신다.(..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을때가 불쑥불쑥 있었다....)


보아하니

이 할머니는 혈압약을 안먹자니 죽을까봐 무섭고, 먹자니 저번에 고생했던게 생각나서 약이 보기도 싫고... 그래서 이도저도 아닌 신기한 순응도를 나타냈던 것이다. 

그동안의 기록을 쭉 살펴보니 항상 집에서 혈압을 재다가 너무 높아지면 덜컥 겁이나서 다음날 지소로 찾아오셨던 거다.


 평소에는 혈압약을 찔금 찔금 먹으면서 '먹기싫은데...' 하는 생각을 항상 하고있다가, 약이 떨어지면 '이기회에 약을 끊으면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먹다가, 혈압이 높아지니까 또 무서워서 덜컥 약을 먹고.


white goun HTN 있는 사람인데, 의사가 계속 약을 올리니 평소에는 hypotension이 되었던거다. 

그러고 쓰러져서야 큰병원에서 약을 너무 세게 썼다는걸 알고 그제서야 약을 줄이니, 환자 순응도가 좋을리가 없다. 게다가 죽고싶냐고 겁까지 줘놔서 당신의 두려움은 제대로 얘기할 기회도 안주고, 공포로써 환자를 다스렸던것이니 환자가 의사와 약에 대해 믿음이 있을리가 없다. 


내가 본지도 어언 2년차, 올때마다 속에 무서웠던 얘기를 하고싶었을 터인데, 말도 못하고 쭈뼜쭈뼜 돌아가는 할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18개월 가까이 되고서야 환자의 마음을 얻은 기분이다. 


오늘의 기분을 잊지 않도록, 그동안의 진료기록의 요약을 적어놔야 겠다. 



아래서부터 읽어야 시간에 흐름에 맞는다.


기록을 돌아보니 환자는 항상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골치아픈 환자는 나보다 더 골치아픈일에 들어있다는걸 명심해야 하겠다. 


내가 처음 이곳에 온게 2011년 5월이니까. 여기 온지 세달째에 첫 만남이 있었다. 


진료일 : 2013-01-30

소견 및 계획 >

      : HTN mx repeat     
     160/100     
      r/o white goun HTN
      "예전에 혈압약을 너무 세게 먹어서 쓰러진적이 있어요."
      (당시 dizzness에도 불구하고 부축하며 걸어가다가 얼굴등을 많이 다침)
      "그 뒤로 혈압약이 보기도 싫고 그래요."
      "의사선생님들만 보면 무서워요." 
      
      -> 작년 3월에 쓰러질뻔한 적이 있다고 얘기했었음.

                                                                

진료일 : 2013-01-03

소견 및 계획 >
      : 약을 안타서 뒤늦게 처방전 다시 뽑아달라고 오심.
                                                                

진료일 : 2012-12-24

소견 및 계획 >
      : HTN mx repeat 
      
      약 다먹고 또 이틀쯤 안드시다 오심.
      
      -> 다음번에 꼭 혈압약 떨어지기 전에 오시구, 혈압계 가지고 오세요,
      -> 건강수첩에 혈압 잰거 적어서 오세요.

                                           

진료일 : 2012-11-28

소견 및 계획 >

      : 엊그제 쟀는데 혈압이 너무 높아요.
      
      BP 190/100
      
      "요새 며칠동안 혈압약을 못먹었어요."
      -> 일주일치 드시고 다시오세요

                          

진료일 : 2012-03-19

소견 및 계획 >

      : HTN mx repeat
      "한방병원에서 재면 정상이에요."
      ->r/o white goun HTN

 
진료일 : 2012-03-12
소견 및 계획 >
      : HTN mx repeat
      -> very poor complience
      -> "의료원에서 약을 쎄게 써서 쓰러질뻔 한 적이 있어요."
      -> 일주일치만 처방하고 다시 오셔서 재보시라.


진료일 : 2011-08-19
소견 및 계획 >

      : HTN mx repeat
      white goun HTN 의심됨.
      -> 160/100 , 150/92
      밖에서 기계로쟀을때
      -> 136/80



많은 어르신들의 맘속의 두려움이 없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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